66. 거리감
거리감이 느껴지면
미세하게나마 시간이 걸린다.
아주 작게나마
두개의 개체
두개의 공간
나와 너로 주객으로 벌어진다.
이것이 분열이다.
자기 내면에서조차
보이는 허공이 있고
허공을 보는 내가 있으면
보는 자와
보이는 자로 갈라져
거리감이 존재한다.
이 거리감은
시간성이며
생멸이 있으며
무한하고 영원하지 않으며
둘로 갈라진 분열성
물성이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다가가야 한다.
파고들어야 한다.
될 때까지 바라봐야 한다.
내면
텅 빈 허공을
계속해서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신비하게도
계속해서 바라보기만 하면
거리감은 좁혀진다.
보고 또 보다가 보면
어느 순간
보이던 허공과
보는 나 사이에
거리감이 없어진다.
붙어버린 것이다.
붙자마자
오직 하나의
절대공간만이 존재한다.
이 순간부터는
두 번 다시
있다 없다하지 않는다.
내면의 공간이
항상 존재한다.
이때의 느낌은
내면
허공이
공간이
나(我)
자신이다.
자체이다.
더 이상
보는 내가 없고
보이는 허공도 없다.
거리감이 없다.
오직 부동한 공간
절대공간만이 존재한다.
믿는 자와
믿음의 대상간의 사이에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이것은 분열이며
합일이 아니다.
아직
소아와 대아와의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한다.
믿는다는 말은
믿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생각 시간성
소아 에고의 언어이며
합일하지 못한 상태의 고백이다.
거리감이 없다면
분열이 없다면
합일이라면
자기 자신 자체라면
믿는 자도 없고
믿을 대상도 없다.
거리감이 있으면
주객으로 갈라져
분열의 고통이 따른다.
거리감이 없으면
주객일체로서
분열의 고통이 없다.
그래서 언어가 바뀐다.
진정한
자기
자신
자체
거리감이 없는 존재로서
분열의 언어는 사라지고
합일의 언어가 나와진다.
믿음의 차원은
존재
사실
진실
합일의 차원으로
차원변경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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