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수행을 한다고
주문이나 염불을 하면
한 생각이 비워지는 수도 있으나
멍해져
똑똑해지지 않고
힘이 없기 쉽습니다.
몸 수행을 한다고
걷기나
기공체조 요가 동작을 하여도
움직이는 동작에 빠져
정작 핵심인 관찰은 놓치고
행위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명상이 도움이 된다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지만
차츰 졸거나
잠에 빠지거나
번뇌망상으로 살아남습니다.
얼마나 발전하는지 가늠이 안 됩니다.
좀 깨달았다는 사람의
동영상을 검색하여 보거나
글을 읽어 보거나
직접 찾아가 보아도
알음알이 지식만 늘어갈 뿐
정작 확실한 깨달음을
증득하지는 못합니다.
일상생활이 수행이라 하여
몸 돌아봄
마음 돌아봄을 하려고 하지만
힘이 없어
하다 말다 하다가
포기하거나
주변에서 맴돌기만 합니다.
수행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될 때까지 하여
꿰뚫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성공해야 합니다.
하면 하는 만큼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말과 글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촌 진화 발전의 정점에
인간이 있는 이유는
서로 소통하고 전달할 수 있는
말과 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과 글로 공부해야 합니다.
말과 글로 수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말과 글을
한 번에 공부할 수 있는 것이
낭독입니다.
아무거나
낭독하는 것이 아니고
내면에서 받아 적은
진공의 글을
자기 말소리를 들으면서
낭독하다가 보면
읽는 사람도
글 쓴 사람의 상태와 같아집니다.
고요해집니다.
공부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기본입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듣기는
자기 말하는 소리를 듣고
낭독하는
자기 말소리를
듣다가 보면
귓구멍이 뚫립니다.
공간귀가 복원됩니다.
내면이 복원됩니다.
안되기가 더 어렵습니다.
말하기는
듣기에 충실하다 보면
내면이 복원되고
내면이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저절로 알맞은 말
조화로운 말을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눈 뜬자와 자주 탁마를 하면
적재적소에
능수능란해지고
자유자재해집니다.
아무 말이나 배우는 게 아니고
내면에서
진공에서
창조하는 말을 배우는 것입니다.
읽기는
생각 차원에서 적은
지식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텅 비우는
읽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고요가 복원됩니다.
공간이 복원됩니다.
내면이 복원됩니다.
묵독보다 낭독이
공간 복원에 뛰어납니다.
쓰기는
낭독을 통하여
내면이 복원되면
한 생각
내는 연습을 해봐야 합니다.
자문자답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고
말소리 들으면서 소통을 해보고
스스로 글을 받아 적어봐야 합니다.
글을 써 봄으로서
무심일심의 힘이
더욱더 돈독해집니다.
더 자상해지고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더 넉넉해지고 여유로워집니다.
또한
직접 써봄으로서
낭독의 깊이가
한 차원 달라집니다.
비로소
자기 것이 됩니다.
낭독을 통하여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공부하면 하는 만큼
그대로 발전하니
공명정대합니다.
어느 정도 발전하는지
회독 수가 말을 해줍니다.
백독을 향하여
한발 한발 나아가면
읽은 만큼 편안해지고
읽은 만큼 힘이 키워집니다.
공부는 낭독입니다.
공부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입니다.
편안한 가운데 똑똑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