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파고든다는 것
보는 자
보이는 자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형의 것과
무형의 것!
몸을 보거나
생각 마음을 보는 것은
움직이는 대상을 보는 것으로서
보는 자 주관과
보이는 자 객관이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원성이며
분열입니다.
보는 자가
보이는 자를
끊어짐이 없이
항상 보기 시작하면
둘로 갈라짐은
거리감이 좁혀져
둘이되
둘이 아니게 됩니다.
움직이는 몸 마음과
움직이지 않는 관찰자가
정중동으로 동시에 존재합니다.
동정일여
몽중일여입니다.
움직이나 움직이지 않으나
꿈을 꾸나 꿈을 꾸지 않으나
관찰자
주시자
공간성은
항상 존재하여
일여(⼀如)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유위이며
시간성입니다.
잡았다 놓쳤다가 있습니다.
공간성을 보려고 하면 보이지만
보려고 하지 않으면
무자각 상태가 됩니다.
내면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닌데
항상 하지는 않습니다.
시간 차이가 있고
거리가 있고
보는 자와 보이는 자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보는 자도 허공이고
보이는 자도 허공입니다.
보는 자도 무심이고
보이는 자도 무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공과 허공 사이에
무심과 무심 사이에
시간차가 있고
거리감이 있습니다.
분열입니다.
아직 완전한 합일이 아닙니다.
항상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 자체가 아닙니다.
눈은 떴으나
아직 깜박깜박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를 맞이하면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내면을 볼뿐입니다.
내면공간을 항상 볼뿐입니다.
거리감이 느껴지거나 말거나
있다가 없다가 하거나 말거나
계속 보는 것뿐입니다.
힘 하나도 들지 않는데
힘 무지하게 듭니다.
남들은 무엇을 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오직 내면의 거울을
항상 볼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붙어버립니다.
그런데 붙고 보면
본래 나누어져 있지 않았음을 봅니다.
내면눈입니다.
공간눈입니다.
먼지 하나 없는
텅빈
허공눈입니다.
한 생각을 지우려면 지우고
한 생각을 만들려면 만드는
무궁한
자각눈입니다.
전체이며
완전무결입니다.
항상 존재하여 긴지 모르고
자기 자신 자체라서 긴지 모르고
각자가 아닌 사람이 없어서
없는 사람이 없어서
무자각 상태라서 모를 뿐입니다.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일지 모르나
오른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입니다.
방법은 없습니다.
오르고 오르면 정상에 도착합니다.
꾸역꾸역 한발 한발 나아가면
하늘을 만나고
하늘눈
내면눈
공간눈
눈깔을 뜨고야 맙니다.
무한해서 한눈이고
유일무이한 절대라서 한눈입니다.
파고든다는 것은
시간성이 공간성을 향하여
도착할 때까지
항상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보고 또 보면
눈은 복원됩니다.
사라지지 않는
깜박여지지 않는
절대눈입니다.
개념정리나
설명이 아닙니다.
오직 실천만이 증득할 뿐입니다.
낭독이 곧장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