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죽음과 삶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도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이유도
모두 살기 위해서다.
밥 한술 먹는 이유도
숨 한숨 쉬는 이유도
모두 죽지 않기 위해서다.
움직이는 모든 물성은
한번 태어나면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겁이 나고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무섭다.
그래서
물질인 몸은
물질인 마음은
생각, 감정, 느낌은
궁극에 마지막 깊은 심연에는
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어쩌면 모든 몸짓은
삶에 대한 애착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하여도 맞는 말이다.
가장 집요한 생명력은
생각의 집착이다.
한번 세워둔 고정관념은 지우지 못한다.
어떻게든 한 생각 내어서
생존을 도모한다.
한 생각은
절벽을 싫어하고
허공을 싫어하고
무심이 싫고
하늘이 싫고
적막이 싫고
고요가 싫고
텅빔이 싫고
없음이 싫다.
스스로 죽음이 싫어서
한 생각을 비추어
비우지 못한다.
그래서 바탕을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죽음을 보기가 어렵다.
여기서 죽음은
생각의 죽음이다.
생각의 사라짐이다.
생각의 비움이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보고 또 보다가 보면
어느 사이 문득
생각이 사라지고
한 생각도 뜨지 않음을 본다.
그 바탕이
생각의 죽음이다.
생각이 없음이다.
한 생각도 일지 않아 적멸이다.
고요이며 침묵이다.
이 생각의 죽음이 안식이다.
이것이 본질의 대우주이다.
우주에서 별이 생로병사 하듯
우리의 몸도 허공에서 생로병사하고
우리의 생각도 내면에서 생로병사 한다.
이 우주, 허공, 내면이
생사가 없는 바탕으로서
별과 몸과 생각을 만드는 주인이다.
생사 없는 자가
생사 있는 자를 낳고 거두는 것이다.
죽음과 삶이 다르되 다르지 않아
포용 되는 것이다.
머리가 텅 비어 무심한 것이
생각은 죽은 가운데
몸은 숨을 쉬고 있어
죽은 가운데 살아있고
살아있는 가운데 죽어 있어
생사일여로서
생사를 넘은 가운데 포용한 것이다.
살아서 죽어봄으로
언제든지 죽어 있어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된다.
한 생각은 죽고 살아도
그 바탕은 생사가 없는 존재이다.
내면의 위력이다.
모두가 그런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