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 복원되는 과정
42. 내면이 복원되는 과정
질문)
자기의 말소리를 듣는 것과
자기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 것과
면벽이 무엇인지요?
답변)
자기의 말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자기가 입 밖으로 내는 소리를
자기 귀로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말소리를
자기가 듣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은
무의식에서 말하는
행위만 있는 것이고
자기가 하는 말소리를
자기가 들으면서 말하는 것은
자기 말소리에 깨어있는
주시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말소리를 들을 때와
듣지 못 할 때의 차이점은
자기 말소리를 듣지 못하면
마치 운전할 때
운전대를 잡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말소리에도
강약완급 고저장단이 있는데
자기 말소리를 들으면서 말하게 되면
경우에 따라
강약완급 고저장단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말소리를 들으면서 말하게 되면
갈라진 소리가 모아져 나오고
흩어지는 소리가 집중되어 나오고
탁한 소리가 맑아지고
어두운 소리가 밝은 소리로 나옵니다.
소리 자체가 고요에서 나오기 때문에
안정된 파장을 주어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며
늘어지는 사람을 또렷하게 깨어나게 합니다.
자기 말소리를
들으면서 말을 하다 보면
듣는 감각이 깊어지고 섬세해져서
그 말소리의 내용과 상관없이
소리의 파장만 들어도
그 의식수준까지 감지가 됩니다.
사람의 소리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소리에도 귀가 열려서
신비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말소리 듣기가 되어
입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감각의 힘이 깊어져서
자기 내면에서 나는
소리 없는 소리도
감지가 되기 시작합니다.
생각, 마음, 감정, 느낌의 소리입니다.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자기만이 감지할 수 있는 파장들입니다.
이 소리 없는 소리들은
말소리에 비하여 포착하기가 어렵고
대단히 빠릅니다.
그러나
줄기차게 보고 또 보다가 보면
점차로 감지가 되고
점차로 사라지게 됩니다.
들어주고 들어주다가 보면
내면이 고요해 지면서
안이나 밖이나
고요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때 비로소
고요를 직면하게 됩니다.
이것이 내면입니다.
이것이 텅빔입니다.
맑고 깨끗하며 화안합니다.
처음에는
보이는 허공이 있고
그 허공을 보는 나 사이에
거리가 느껴집니다.
이때 줄기차게
또 한 번 파고들어야 합니다.
이때는 동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고
동하는 것이 없는
내면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름 붙여서
면벽(面壁)이라고 합니다.
면벽은
물질의 벽을 보는 것이 아니고
고요한 자기 내면의
바탕을 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간에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보고 또 보다가 보면
보는 자도 사라지고
보이는 자도 사라져
전체 내면 공간만이 존재합니다.
이 내면은
있다 없다 하지 않고
항상 존재합니다.
보려고
노력해서 보는 것이 아니고
있어서 보이고
자기 자신이고 자체입니다.
이 침묵 고요 내면에서
소리 없는 소리인
생각, 마음, 감정, 느낌이 만들어지고
소리 있는 말소리도 만들어집니다.
진정한 바탕이고 근본 근원입니다.
자기 말소리 듣기를 통하여
자기 생각, 마음, 감정, 느낌 듣기를 통하여
자기 내면, 고요, 정신에 까지 도달하고 보면
더 이상
가고 올 곳이 없습니다.
궁극입니다.
면벽이지만
자기 자신이 벽인지라
벽이 없습니다.
무한이고 고요입니다.
그 안에서
수만 가지의 소리가 만들어지니
참 신비하지요.